"All children, except one, grow up." J.M. 배리가 1904년에 쓴 희곡 '피터팬'은 자라지 않는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피터팬은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어린이로 살며 해적과 싸우고 요정과 어울립니다. 웬디는 런던의 보통 소녀로 자라야 하고 숙녀가 되어야 하지만, 어느 날 밤 피터팬이 창문으로 들어와 말합니다. "나와 함께 네버랜드로 가자. 거기서는 어른이 되지 않아도 돼." 웬디는 동생들과 함께 날아가 잃어버린 소년들을 만나고 후크 선장과 싸우며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깨닫습니다. 네버랜드는 영원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원작의 피터팬은 어둡습니다. 그는 감정이 얕고 잃어버린 소년들이 너무 자라면 내치는 비정한 면모도 있습니다. 영원한 소년이지만 동시에 외롭고 텅 비어 있으며 진짜 사랑을 모릅니다. 120년 동안 영화와 애니메이션들은 이 어둠을 저마다 다르게 다뤘습니다. 1953년 디즈니는 피터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1991년 로빈 윌리엄스는 어른이 된 피터의 후회를 보여줬으며, 2003년 작품은 원작의 비극을 강조했고, 2023년 작품은 성인 웬디가 피터에게 묻게 만들었습니다. "넌 정말 행복하니?" 피터는 낭만적 영웅에서 문제적 인물이 됐고, 웬디는 수동적 소녀에서 선택하는 여성이 됐으며, 후크는 악당에서 피해자가 됐습니다.

1. 영원한 소년의 빛과 그림자 - 피터팬은 행복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1953)의 피터(바비 드리스콜 목소리)는 완벽한 영웅이었습니다.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며 재미있는 그는 웬디(캐서린 보몬트)를 구하고 후크 선장(한스 콘리드)을 물리쳤습니다. 디즈니의 네버랜드는 해적선과 인어 라군, 해골 바위로 가득한 컬러풀한 모험의 세계였고, 위험은 항상 재미있었으며 후크 선장은 무섭기보다 코믹했습니다. 자라지 않는 것은 긍정적으로 그려졌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는 하늘을 날며 웃었는데, 디즈니는 이것을 승리로 묘사했습니다. 전후 시대 아이들에게 이것은 위안이었습니다. "너는 자라지 않아도 돼. 너는 영원히 놀 수 있어." 원작의 어두움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밝게만 표현된 자유는 왠지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로빈 윌리엄스의 피터(1991, Hook)는 달랐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 영화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피터팬이 자랐다면? 윌리엄스의 피터 배닝은 40대 기업 변호사로 휴대폰에 중독되어 일에 쫓기며 아이들을 무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성공했지만 불행했고 어른이 됐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잃어버렸습니다. 웬디(매기 스미스)는 말합니다. "피터, 넌 네버랜드를 잊었어. 넌 날 수 있다는 걸 잊었어." 후크(더스틴 호프만)가 아이들을 납치하자 피터는 네버랜드로 돌아가야 했지만 날 수도 싸울 수도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영화의 핵심은 피터가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었고, 그는 다시 날기를 배웠지만 마지막에는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라는 것은 슬프지만 필요하고, 진짜 행복은 책임과 사랑에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제레미 섬프터의 피터(2003)는 원작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P.J. 호건 감독은 배리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섬프터의 피터는 매력적이지만 이기적이고, 용감하지만 잔인하며, 자유롭지만 공허했습니다. 감정이 가볍고 웬디를 좋아했지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영화는 피터의 공허함을 보여줬습니다. 그는 웬디가 떠난 후 빨리 잊을 것이었으며, 영원히 반복되는 현재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2023년 디즈니+ 작품의 피터(알렉산더 몰로니)는 가장 현대적이었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피터가 아니라 웬디(에버 앤더슨)였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중요했습니다.
2. 웬디의 선택 - 네버랜드에 남을 것인가, 자랄 것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1953)의 웬디는 전형적인 1950년대 소녀였습니다. 잃어버린 소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돌보며 어머니 역할을 했습니다. 피터를 짝사랑했지만 마지막에는 평범하게 자라나 어른이 되기로 결정했는데, 영화는 그 선택의 무게를 깊이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날아가는 피터를 바라보는 웬디는 슬펐지만 평화로웠고, 디즈니는 이것을 올바른 선택으로 그렸습니다. 2003년 레이첼 허드우드의 웬디는 가장 복잡했습니다. 그녀는 피터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자라고 싶었고, 어른이 되어 엄마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허드우드의 웬디와 섬프터의 피터 사이에는 성적 긴장이 있었습니다. 웬디가 피터에게 키스하려 했을 때 그는 두려워했습니다. "난 자라고 싶지 않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 아팠습니다. 웬디는 런던으로 돌아가 여인이 되고 결혼해서 딸 제인을 낳았습니다. 피터는 그녀를 잊었습니다. 몇 년 후 그가 창문으로 돌아왔을 때 웬디는 어른이 됐고 피터는 여전히 소년이었습니다. "안녕, 피터." 웬디는 슬프게 미소 짓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2023년 에버 앤더슨의 웬디는 가장 주체적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로워리 감독은 웬디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기숙학교와 어른의 삶을 두려워하던 그녀는 피터를 따라 탈출했지만 네버랜드에서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피터는 행복해 보였지만 텅 비어 있었고, 잃어버린 소년들은 자유로웠지만 길을 잃었으며, 네버랜드는 마법 같았지만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웬디가 피터에게 물었습니다. "넌 정말 행복하니?" 피터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웬디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자라기로 선택했습니다. 영화는 늙은 웬디(조디 터너-스미스)가 손녀들에게 피터팬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으로 미래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피터가 돌아왔을 때 피터에게 인사를 건네는 나이 든 웬디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3. 후크 선장의 진실 - 악당인가, 피터의 희생자인가
디즈니 작품에서(1953) 후크 선장(한스 콘리드)은 전형적인 악당이었습니다. 과장되고 코믹하며 무섭지 않은 그는 악어를 두려워하고 항상 피터에게 졌습니다. 동기도 단순했습니다. 그냥 악당이니까. 하지만 사실 원작에서 후크는 더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배리는 그를 "유일하게 예의 바른 해적"이라고 썼고 이튼 출신으로 좋은 형식을 중시한다고 했습니다.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신사가 해적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의 후크(1991)는 가장 복잡했습니다. 우아하고 지적이며 비극적인 인물로, 피터를 증오했지만 동시에 집착했고 피터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피터의 아들 잭을 납치해 아버지를 배신하게 만들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악이 아니었습니다. 후크는 피터에게 버림받은 아이처럼 행동했고 잭을 통해 피터의 관심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가 피터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없으면, 나는 누구지?"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후크가 악어에게 먹혔을 때 그는 거의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집착으로부터, 영원한 반복으로부터 마침내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제이슨 아이작스의 후크(2003)는 가장 위협적이었습니다. 코믹하지 않고 진짜로 위험했으며 우아하지만 잔인하고 신사적이지만 무자비했습니다. 이 작품은 후크와 피터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처럼 그렸는데, 둘은 적이면서 서로를 정의하는 존재였습니다. 후크는 영원히 네버랜드에 갇혀 피터와 싸우고 지고 다시 싸우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탈출은 없었습니다. 주드 로의 후크(2023)는 가장 인간적이었습니다. 로워리 감독은 후크에게 결정적인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그는 한때 잃어버린 소년이었고 피터의 친구였으며 자라기를 원했지만 피터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네버랜드를 떠나려 하자 피터가 그의 손을 잘랐습니다. 이 반전은 강렬했습니다. 후크를 피터의 희생자로 그렸습니다. 친구가 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피터가 그를 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후크는 웬디에게 경고했습니다. "피터는 네가 자라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가 나를 용서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며 - 자라는 용기, 그리고 열린 창문
우리는 왜 여전히 피터팬을 보는가? 아마도 우리도 자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임을 두려워하고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하는 자아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고, 네버랜드는 환상이라는 것을요. 피터는 지금도 날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히 소년입니다. 그리고 어딘가의 열린 창문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2023년의 웬디는 두려움 없이 창문을 닫았습니다. 자라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하루하루 시작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피터팬이 살고 있지만, 그것과 함께 자라는 것이 어쩌면 진짜 모험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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