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s no place like home." 집 같은 곳은 없다. 도로시는 빨간 구두 뒤꿈치를 세 번 두드리며 이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면 그녀는 오즈를 떠나 캔자스로 돌아갑니다. 엠 아줌마와 헨리 아저씨가 있는 회색빛 농장으로. L. 프랭크 바움이 1900년에 쓴 동화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문화의 일부가 됐습니다. 노란 벽돌길과 에메랄드 시티, 서쪽의 사악한 마녀,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 그리고 위대하고 강력한 오즈 마법사. 125년 동안 영화와 뮤지컬들은 이 이야기에 조금씩 변주를 두면서 계속 리메이크했습니다. 1939년 주디 갈랜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1978년 다이애나 로스는 할렘에서 자신을 찾았으며, 2013년 제임스 프랑코는 사기꾼에서 마법사가 됐고, 2024~2025년 신시아 에리보는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서쪽 마녀는 정말 악했는가?" 도로시는 순진한 소녀에서 자기 발견의 여정을 떠나는 주체가 됐고, 마법사는 전능한 존재에서 커튼 뒤의 사기꾼이 됐으며, 서쪽 마녀는 악당에서 희생자가 됐다가 마침내 영웅이 됐습니다. 노란 벽돌길은 여전히 에메랄드 시티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곳에 답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캔자스인가, 오즈인가,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걸까요?

1. 집으로 향하는 도로시의 여정 - 그런데 집은 어디인가?
주디 갈랜드의 도로시(1939)는 미국 영화사의 아이콘입니다. 빅터 플레밍 감독의 이 작품은 테크니컬러 혁명이었는데, 캔자스 장면을 세피아 톤으로 촬영하다가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는 순간 폭발적인 컬러로 전환하며 관객들의 숨을 멎게 만들었습니다. 16살 갈랜드의 도로시는 캔자스 농장에서 "Over the Rainbow"를 부르며 더 나은 곳을 꿈꾸던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토네이도가 그녀를 오즈로 데려간 후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오즈는 아름답고 마법으로 가득했지만 낯설었고 위험했으며 엠 아줌마가 그리웠습니다. 마지막에 "There's no place like home"을 반복하며 빨간 구두를 세 번 두드리는 장면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아무리 오즈가 아름다워도 집보다 나은 곳은 없다는 것. 이것은 대공황 시대 미국의 메시지였습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가족과 함께 집에 머물러라. 다이애나 로스의 도로시(1978, The Wiz)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오즈를 뉴욕으로 옮기고 모든 캐릭터를 흑인으로 캐스팅한 이 영화는 소울과 펑크 음악을 입힌 문화적 재해석이었습니다. 로스의 도로시는 24살 할렘 초등학교 교사로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었으며 변화를 두려워했습니다. 추수감사절 저녁 식사에서 맨해튼 직장 제안을 거절할 만큼요. 눈보라가 그녀를 오즈로 데려갔을 때 이것은 자기 발견의 여정이었습니다. 허수아비(마이클 잭슨), 양철 나무꾼(니플시 러셀), 사자(테드 로스)는 그녀의 친구이자 멘토였고, "Ease on Down the Road"를 함께 부르며 노란 벽돌길을 걷는 장면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여정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로스의 도로시는 맨해튼 직장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고 자신감을 얻었으며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집은 안전지대가 아니라 당신이 성장한 후에 비로소 돌아가는 곳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2013년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에는 도로시가 없습니다. 대신 캔자스 서커스의 사기꾼 마술사 오스카 딕스(제임스 프랑코)가 열기구를 타고 오즈에 도착해 예언된 마법사로 오해받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이 작품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었던 오스카가 도자기 소녀를 구하고 사람들을 위해 싸우며 변해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캔자스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오즈에 머물기로 선택한 그의 이야기는 새로운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집은 당신이 떠나온 곳이 아니라 당신이 필요하고 의미 있는 곳이라고.
2. 사기꾼 마법사 - 커튼 뒤에 숨은 권력의 얼굴
'오즈의 마법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법사의 정체가 폭로되는 순간입니다. 위대하고 강력한 오즈는 사실 커튼 뒤에서 레버를 당기는 평범한 노인이었습니다. "나는 나쁜 마법사가 아니야. 나는 그냥 나쁜 사람일 뿐이지." 1939년 프랭크 모건의 마법사는 캔자스에서 온 서커스 마술사가 열기구 사고로 오즈에 도착해 사람들이 마법사로 착각하자 그 역할을 받아들인 인물이었습니다. 영화는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는 허수아비에게 졸업장을, 양철 나무꾼에게 하트 모양 시계를, 사자에게 용기 훈장을 줬는데, 가짜였지만 상징으로 작동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형편없는 마법사였어." 인간적이고 솔직하며 슬픈 고백이었습니다. 1978년 The Wiz의 마법사(리처드 프라이어)는 더 정치적이었습니다. 뉴욕 시청 관리인이 레버와 스크린으로 마법사 행세를 하다 폭로되어 고백했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냥... 아무도 아니야." 이것은 권력 없이 권력이 있는 척하며 사람들이 믿어주길 기다린 지도자들에 대한 풍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로시에게 진실도 말했습니다. "너는 항상 집에 갈 힘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너는 스스로 배워야 했지." 답은 마법사가 아닌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13년 작품의 오스카(제임스 프랑코)는 처음부터 자신이 사기꾼임을 알았습니다. 진짜 마법을 쓰지 못했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환상과 속임수로 사람들을 승리로 이끌었고, 스스로 커튼 뒤로 들어가 위대하고 강력한 오즈가 됐습니다. 이 작품이 던진 질문은 날카로웠습니다. 마법사는 진짜 마법이 필요한가, 아니면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상징이 되는 것으로 충분한가?
3. 악한 마녀의 진실 - 악당에서 영웅으로, 위키드
1939년 마가렛 해밀턴의 서쪽 마녀는 악 그 자체였습니다. 초록 피부와 뾰족한 모자, 사악한 웃음. 이유 없이 악했고 과거도 동기도 없었으며 단순한 악당이었습니다. 도로시가 물을 부어 그녀를 녹였을 때 "나는 녹고 있어! 녹고 있어!"라고 비명을 지르며 죽었고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서쪽 마녀의 죽음으로 완벽해진 해피엔딩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2025년, ‘위키드’는 이 모든 것을 뒤집었습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2024, 위키드)는 악당이 아니었습니다. 초록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 차별받고 사랑받지 못했으며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됐던 인물이었습니다. 샤이즈 대학에서 만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모든 것이 엘파바와 달랐습니다. 금발에 인기 있고 사랑받는 존재였습니다. 처음에 서로를 싫어했던 둘은 점차 깊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엘파바는 정의를 믿었고 오즈의 마법사(제프 골드블럼)를 만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에메랄드 시티에서 진실을 알았습니다. 마법사는 사기꾼이었고 오즈는 동물들을 박해하고 있었습니다.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선택해야 했을 때 그녀는 저항을 택했습니다. "Defying Gravity"를 부르며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그 순간 그녀는 오즈 정권의 선전 속에서 "서쪽의 사악한 마녀"가 됐습니다. 2025년 위키드: For Good은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오즈 정권은 엘파바를 악마화했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러티브가 중요했습니다. 글린다는 체제 안에 머물며 내적으로 갈등했습니다. 친구를 배신한 것인가? 클라이맥스에서 도로시가 물을 부었을 때 관객들은 1939년의 장면을 엘파바의 관점에서 다시 봤습니다. 하지만 가장 강렬한 순간은 엘파바와 글린다가 마지막으로 만나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신을 알았기에, 나는 영원히 달라졌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그들을 갈라놓았지만, 서로를 변화시켰고 그 변화는 영원했습니다. 위키드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악당은 만들어집니다. 엘파바는 악하게 태어나지 않았지만 차별과 선전, 권력의 조작이 그녀를 악당으로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1939년부터 지금까지.
마치며 - 노란 벽돌길의 끝에서, 집을 다시 묻다
우리는 왜 여전히 오즈로 가는가? 우리 모두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를, 문제가 없고 받아들여지는 곳을 꿈꿉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습니다. 마법사는 사기꾼이고, 악당은 만들어지고, 집은 항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노란 벽돌길은 에메랄드 시티로 이어지지만 에메랄드 시티는 녹색 안경으로 만들어진 환상입니다. 어쩌면 집은 장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사랑받고 변화시키고 변화되는 곳. 엘파바와 글린다는 노래했습니다. "당신을 알았기에, 나는 영원히 달라졌다." 우리도 오즈를 알았기에 영원히 달라졌습니다. 1939년부터 2025년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빨간 구두는 여전히 빛나고 노란 벽돌길은 여전히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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