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truly one, but truly two." 나는 진정 하나가 아니라, 진정 둘이다. 1886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악몽을 꾸고 깨어나 3일 만에 초고를 썼습니다. 아내 패니가 읽고 말했습니다. "이건 우화야. 도덕적 교훈이 있어야 해." 스티븐슨은 원고를 불태우고 다시 썼습니다. 또 3일 만에. 런던 신사 헨리 지킬 박사는 인간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분리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실험을 합니다. 약을 마시자 그는 에드워드 하이드로 변했고, 하이드는 도덕도 양심도 억압도 없이 원하는 것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통제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약 없이도 변하기 시작했고 하이드는 점점 강해졌으며 지킬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작의 결말은 비극입니다. 지킬은 자살했고 그의 친구 어터슨이 편지를 발견하며 진실이 드러나게 되지요. 140년 동안 여러 리메이크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1931년 프레드릭 마치의 하이드는 성적 욕망이었고, 1941년 스펜서 트레이시의 하이드는 심리적이었으며, 1996년 메리 라일리는 하녀의 눈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썼고, 2022년 에디 이자드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하이드는 단순한 악에서 억압된 욕망이 됐고, 지킬은 피해자에서 공범이 됐으며, 질문은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우리 안에도 하이드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를 통제할 수 있는가?

1. 지킬의 실험 -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면
프레드릭 마치의 지킬 박사(1931)는 루벤 마물리안 감독의 걸작이었습니다. 마치는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작품은 공포 영화의 고전이 됐습니다. 마치의 지킬은 잘생기고 예의 바른 런던 의사로 약혼녀 머릴(로즈 호바트)을 사랑했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억압과 도덕의 제약, 결혼 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규범 앞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동료 의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분리할 수 있다면 악을 제거하고 순수한 선만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동기는 자유였습니다. 변신 장면은 1931년 기준으로 혁명적이었는데, 마물리안 감독은 특수 메이크업 없이 필터와 조명만으로 마치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마가 튀어나오고 이빨이 드러나며 몸짓이 야수 같아진 하이드는 진화론적 퇴행, 즉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의 덩어리였습니다. 하이드가 술집의 아이비(미리엄 홉킨스)를 만나 학대하고 결국 죽이는 장면은 노골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아이비가 죽은 후 지킬은 하이드를 없애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약 없이도 변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경찰의 총에 맞아 죽으며 지킬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스펜서 트레이시의 지킬 박사(1941)는 빅터 플레밍 감독 작품이었습니다. 트레이시는 과도한 메이크업을 거부하고 하이드를 내면으로 연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의 지킬은 진심으로 인류를 돕고 싶어 하는 과학자였지만, 약혼녀 베아트릭스(라나 터너)의 아버지가 결혼을 미루면서 억압과 좌절이 쌓여갔습니다. 이 영화는 프로이트적이었습니다. 두 여성이 마차를 끌고 지킬이 채찍질하는 꿈 시퀀스는 억압된 욕망과 권력, 통제를 시각화했습니다. 트레이시의 하이드는 외모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날카로운 눈과 잔인한 미소, 포식자 같은 움직임으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됐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하이드는 괴물이 아니에요. 그는 지킬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에요." 이 영화의 핵심은 지킬이 공원에서 약도 마시지 않았는데 변하기 시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통제는 처음부터 환상이었습니다. 존 말코비치의 지킬 박사(1996)는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메리 라일리'였습니다. 이 영화는 지킬이나 하이드가 주인공이 아니라 지킬의 하녀 메리(줄리아 로버츠)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다시 썼다는 점에서 독특했습니다. 말코비치의 지킬은 부드럽고 친절하며 거의 성자 같았지만, 동시에 비밀을 숨기고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하이드가 지킬의 "조수"로 나타났을 때 메리는 두 사람을 따로 봤고 둘 다에게 다른 이유로 끌렸습니다. 진실을 알았을 때 그녀가 느낀 것은 배신감이었습니다. 지킬은 선한 척했지만 하이드였고, 하이드는 그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둘 다 진짜였고 그것이 더 섬뜩했습니다. 에디 이자드의 지킬 박사(2022)는 조 스티븐슨 감독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빅토리아 시대 배경을 유지하면서도 지킬의 동기를 더 깊이 탐구했습니다. 이자드의 지킬은 내면의 갈등과 억압된 부분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는 인물이었고, 하이드는 그 억압의 폭발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하이드는 외부에서 온 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억압하고 숨기고 부인하는 부분은 언젠가 반드시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2. 하이드의 탄생 - 억압된 욕망이 만든 얼굴
원작에서 하이드는 지킬보다 키가 작고 젊으며 더 활기찬 인물로 묘사됩니다. 지킬이 평생 선하게 살려 노력하며 억눌러온 악한 면이 덜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각 영화는 이 설정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1931년 마치의 하이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반영한 인물이었습니다. 인간이 동물이었을 때의 모습, 본능과 욕망만 남은 존재였습니다. 그가 아이비를 소유하고 학대하다 결국 죽이는 과정은 끔찍했고, 홉킨스의 공포에 질린 연기는 하이드의 폭력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이드가 아이비를 죽인 후 약을 버리고 변신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통제력을 잃은 지킬은 끝내 하이드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1941년 트레이시의 하이드는 덜 괴물 같고 더 인간 같았습니다. 잔인하면서도 활기차고 자유로웠는데, 웃고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빅토리아 시대 신사의 모든 규칙을 어기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버그만의 아이비는 처음에 하이드에게 끌렸습니다. 지킬보다 솔직하고 열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킬 박사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구원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로 하이드였으니까요. 1996년 말코비치의 하이드는 가장 성적이고 폭력적이었습니다. 낮은 목소리와 공격적인 몸짓으로 메리를 유혹하려 했고, 메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지킬을 사랑했지만 하이드는 그녀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변신 장면을 목격했을 때 메리는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지킬은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고통받고 있었고, 하이드를 통제하지 못해 괴로워했습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두 사람, 아니 한 사람이었으며, 둘 다 진짜였습니다. 2022년 이자드의 하이드는 단순한 악이 아니었습니다. 지킬이 억압한 모든 것, 욕망과 분노와 자유와 진실이 한꺼번에 폭발한 존재였습니다. 이자드는 표정과 목소리, 몸짓 모두를 바꾸며 지킬과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들어냈는데, 하지만 그것은 결국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3. 메리 라일리 - 피해자의 눈으로 본 괴물
메리 라일리(1996)는 발레리 마틴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지킬과 하이드 이야기를 하녀의 관점에서 완전히 다시 썼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메리(줄리아 로버츠)는 지킬 박사의 집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지킬은 친절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고 아버지와 달랐습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하이드가 지킬의 "조수"로 나타났을 때 메리는 두 사람을 따로 봤지만, 점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비슷했고, 하이드가 나타나면 지킬이 사라졌으며, 뭔가 이상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메리가 변신하는 지킬을 직접 목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코비치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지킬에서 하이드로, 하이드에서 지킬로 변했고, 메리는 공포에 질려 그것을 지켜봤습니다. 진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지킬은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었고 괴로워했지만, 그것이 그가 저지른 일들을 지워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이전 영화들과 달랐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지킬 자신인가, 아니면 그가 학대한 여성들인가? 지킬의 실험은 과학이었는가, 자기 합리화였는가? 결말에서 하이드와 지킬은 죽었고 메리는 살아남았지만, 트라우마를 안고 떠났습니다. 두 남자를 사랑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마치며 - "나는 진정 둘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94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모아 섬에서 폐결핵으로 고생하며 살았던 그는 이 이야기를 단숨에 썼지만 평생 그 주제에 시달렸습니다. 존경받는 작가였지만 젊었을 때 방탕했고, 부르주아 가족 출신이었지만 보헤미안을 동경했으며, 병약했지만 모험을 꿈꿨습니다. 지킬과 하이드는 그의 자화상이었습니다. 140년이 지났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이중성은 인간의 한 면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와 집에서 다른 사람입니다. SNS에서와 혼자 있을 때 다른 얼굴을 가집니다. 우리는 지킬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통제는 환상이고, 하이드는 강해지며, 결국 우리가 하이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드가 우리를 선택합니다. 그 둘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고전, 스크린을 만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대별 영화들- 토끼굴, 논센스, 매드 해터의 광기로 보는 '정상'의 의미 (0) | 2026.02.19 |
|---|---|
| '몬테크리스토 백작' – 배신의 표현, 완벽한 복수, 그리고 용서의 가능성을 세 편의 영화로 읽다 (0) | 2026.02.18 |
| '노트르담의 꼽추' 무성영화부터 디즈니까지- 쿠아지모도의 얼굴, 에스메랄다의 선택, 프롤로의 욕망, 비극과 희망 사이 (0) | 2026.02.18 |
|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의 재해석- 시대별, 캐스팅, 현대화, 사랑과 폭력 (0) | 2026.02.18 |
| '안나 카레니나' 영화 비교 - 안나와 브론스키, 사회의 심판 시대별 해석 (0) | 2026.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