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 1872년 런던 리폼 클럽에서 필리어스 포그는 내기를 겁니다. 2만 파운드를 걸고 80일 안에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입니다. 쥘 베른이 1873년에 쓴 이 소설은 산업혁명 시대의 낙관주의를 담았습니다. 세계는 작아졌습니다. 증기선과 기차가 대륙을 연결했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됐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유럽인들은 세계를 여행했지만 정복자로서 여행했습니다. 150년 동안 이 이야기는 여러 번 영화화됐습니다. 1956년 데이비드 니븐의 포그는 우아한 영국 신사였습니다. 1989년 피어스 브로스넌의 포그는 문화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스티브 쿠건의 포그는 중심에서 밀려났습니다. 2021년 데이비드 테넌트의 포그는 자신의 특권을 깨달았습니다. 핵심 질문은 하나입니다. 여행은 정복인가, 이해인가? 우리는 관광객인가, 여행자인가?

1. 1956년 데이비드 니븐: 세계는 영국인의 놀이터였다
데이비드 니븐이 연기한 1956년 마이클 앤더슨 감독의 포그를 이해하려면 당시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1956년은 대영제국이 아직 존재하던 시대였습니다. 물론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1947년에 독립했습니다. 수에즈 위기가 1956년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여전히 세계를 자신들의 것으로 여겼습니다. 니븐의 포그는 완벽한 빅토리아 신사였습니다. 그는 정확했고 차갑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클럽에 갔습니다. 그의 삶은 시계처럼 작동했습니다. 내기를 제안했을 때 동료들은 웃었습니다. 80일 안에 세계일주?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포그는 계산했습니다. 증기선과 기차 시간표를 정확히 따르면 가능합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결정했습니다.
포그가 세계를 도는 방식은 모험이 아니라 관리였습니다. 시간표는 곧 제국의 지도였습니다. 세계는 계산 가능한 대상이었고 통제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인도는 3일 할당됐고 홍콩은 2일 할당됐으며 샌프란시스코는 4일 할당됐습니다. 각 도시는 경유지일 뿐이었습니다. 문화는 풍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배경이었습니다. 1956년 작품은 당시 최고의 블록버스터였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올스타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말린 디트리히와 버스터 키튼이 카메오로 등장했습니다. 이 카메오 구조 자체가 상징적이었습니다. 세계 박람회식 소비였습니다. 각 장소에서 유명인이 등장하고 관객은 구경했으며 다음 장소로 넘어갔습니다. 칸티플라스가 연기한 파스파르투는 멕시코 코미디 배우였고 코믹 릴리프였습니다. 그는 서툴렀고 실수했으며 관객들은 웃었습니다. 충성스러운 하인이었지만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이것이 1956년이 비유럽인을 소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셜리 맥레인의 아우다 공주는 인도 사티 의식에서 구출됐습니다. 사티는 과부가 남편의 장례 화장대에 함께 타 죽는 관습이었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야만으로 그렸습니다. 포그가 아우다를 구출하는 것은 문명화였습니다. 유럽 남성이 아시아 여성을 구출하는 서사는 제국주의의 전형이었습니다. 니븐의 포그는 여행 내내 침착했습니다. 인도에서 코끼리를 타고 아메리카에서 기차가 습격당하고 태평양에서 폭풍을 만났습니다. 위기는 극복할 문제였습니다. 세계는 도전할 장애물이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며 포그는 변했습니다. 아우다를 구출하면서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파스파르투와 우정을 쌓으면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내기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휴머니즘이었습니다. 하지만 온정적 제국주의였습니다. 내가 1956년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불편함입니다. 포그는 매력적입니다. 니븐의 연기는 우아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제국주의의 판타지입니다. 세계는 영국인을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문화는 이국적인 장식입니다. 사람들은 조연입니다. 포그가 인간화되는 과정조차 그의 여정이고 그의 성장입니다. 아우다는 그를 변화시키는 도구입니다. 파스파르투는 그를 웃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모든 것이 포그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2. 1989년 피어스 브로스넌: 여행자는 배우기 시작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1989년 버즈 쿨릭 감독의 TV 미니시리즈는 조금 달랐습니다. 1989년은 탈식민주의 시대였습니다. 영국 제국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문화주의가 유행했습니다. 브로스넌의 포그는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때로는 불안했습니다. 실수도 했습니다. 완벽한 신사가 아니라 약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989년 작품은 원작에 충실했습니다. 3부작 미니시리즈였고 책의 디테일을 따라갔습니다. 에릭 아이들이 연기한 파스파르투는 몬티 파이튼 출신이었고 영리하고 재치 있었습니다. 줄리아 닉슨이 연기한 아우다는 강했고 교육받았으며 의견을 표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문화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1989년 작품은 인도와 일본과 미국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각자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으로 그렸습니다. 포그는 현지 관습을 배우려 했습니다. 파스파르투는 현지인들과 소통했습니다. 아우다는 자신의 문화를 설명했습니다. 브로스넌의 포그는 여행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내기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세계의 다양성을 보고 배웠습니다. 인도의 문화와 일본의 전통과 미국의 광활함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더 이상 런던의 좁은 세계에 갇혀있지 않았습니다. 1989년 작품은 제국주의를 완전히 비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를 존중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진전이었습니다. 1989년 포그는 세계를 존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는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배우려는 태도만으로 충분한가? 듣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존중하는 것과 평등한 것은 다릅니다. 1989년은 첫 번째는 시도했지만 두 번째는 아직 멀었습니다.
3. 2004년 재키 찬: 중심이 무너졌다... 정말?
스티브 쿠건이 연기한 2004년 프랭크 코라시 감독의 영화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쿠건은 코미디 배우였습니다. 영화는 가족용 코미디가 됐습니다. 쿠건의 포그는 발명가였고 괴짜였으며 리폼 클럽에서 무시당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재키 찬이 파스파르투를 연기했습니다. 찬은 당시 세계적 스타였습니다.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했습니다. 그를 조연으로 캐스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상 주인공이었습니다. 2004년 영화의 파스파르투는 중국 도둑이었습니다. 비취 부처 상을 훔쳤습니다. 포그의 하인으로 위장해 런던으로 왔습니다. 무술을 잘했습니다. 악당들과 싸웠습니다. 포그를 구했습니다. 액션 시퀀스를 이끌었습니다. 쿠건의 포그는 오히려 조연 같았습니다. 실수했습니다. 곤경에 처했습니다. 찬의 파스파르투가 그를 구했습니다. 영화는 찬의 쇼였습니다. 이것은 원작과 달랐습니다. 하지만 상징적이었습니다. 2004년은 아시아가 부상하던 시대였습니다. 중국 경제가 성장했습니다. 한류가 시작됐습니다. 할리우드는 아시아 시장을 원했습니다. 재키 찬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를 자세히 보면 문제가 보입니다. 재키 찬은 영화의 에너지를 담당했습니다. 서사를 통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싸웠습니다. 결정은 언제나 포그의 몫이었습니다. 포그가 내기를 제안했습니다. 포그가 경로를 정했습니다. 포그가 아우다를 사랑했습니다. 찬의 파스파르투는 이 모든 것을 실행하는 몸이었습니다. 액션 시퀀스를 보면 더 명확합니다. 찬은 놀라운 무술을 보여줬습니다.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왜 싸우는가? 포그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포그의 내기를 위해서입니다. 찬은 스펙터클을 제공했지만 이유는 포그가 가졌습니다. 2004년 영화는 계급 관계를 뒤집었다고 주장합니다. 파스파르투가 더 능력 있습니다. 포그를 보호합니다. 하지만 능력 있는 하인은 여전히 하인입니다. 그는 포그를 섬깁니다. 포그의 여정을 돕습니다. 포그의 성공을 위해 일합니다.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2004년 영화는 나에게 가장 혼란스럽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진전입니다. 아시아 스타가 중심입니다. 유럽 배우가 조연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소비입니다. 찬의 몸은 스펙터클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의 무술은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는 액션을 담당하는 몸으로 소비됩니다. 탈중심화인가? 새로운 형태의 중심화인가?
4. 2021년 데이비드 테넌트: 여행은 특권을 깨닫는 과정이 됐다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2021년 슬림 팜 감독의 BBC 시리즈는 가장 현대적이었습니다. 2021년은 Black Lives Matter 이후였습니다. Me Too 이후였습니다. 사람들은 특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테넌트의 포그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오만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배우려 했습니다. 완벽한 신사가 아니라 결함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2021년 작품의 가장 큰 변화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이브라힘 코마가 연기한 파스파르투는 프랑스 예술가였습니다. 흑인이었습니다. 레오니 베네쉬가 연기한 아비가일 픽스는 기자였습니다. 여성이었습니다. 원작의 픽스 형사를 여성으로 바꿨습니다. 이것은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캐스팅만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리즈는 그들의 경험을 중심에 놓았습니다. 코마의 파스파르투는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흑인으로서 그는 유럽에서도 아시아에서도 미국에서도 차별받았습니다. 포그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영국인 남성으로서 세계를 쉽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스파르투와 아비가일은 달랐습니다. 테넌트의 포그는 여행하며 자신의 특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파스파르투가 경험하는 차별을 목격했습니다. 아비가일이 여성으로서 겪는 제약을 봤습니다. 2021년 작품은 제국주의를 직접 비판했습니다. 인도 장면에서 영국 식민 지배의 폭력이 드러났습니다. 미국 장면에서 원주민 학살이 언급됐습니다. 포그는 자신의 특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2021년 작품은 구출 서사도 재고했습니다. 유럽 남자가 아시아 여성을 구출한다는 설정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시리즈는 이것을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여성 캐릭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졌습니다.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었습니다. 2021년 작품은 마스터와 하인 관계도 거부했습니다. 파스파르투는 포그의 하인이 아니었습니다. 여행 동반자였습니다. 동등했습니다. 때로는 포그를 가르쳤습니다. 포그도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2021년 작품은 특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특권을 인정하는 주체는 여전히 특권을 가진 자입니다. 반성의 중심 역시 포그입니다. 그의 여정입니다. 그의 깨달음입니다. 그의 성장입니다. 파스파르투는 여전히 포그의 여정을 돕습니다. 아비가일은 여전히 포그와 함께 여행합니다. 그들은 더 능동적입니다. 더 복잡합니다. 더 인간적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포그의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2021년 시리즈를 보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진전입니다. 확실히 진전입니다. 1956년에서 2021년까지 우리는 분명히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충분한가요? 포그가 반성하는 것과 포그가 중심에서 물러나는 것은 다릅니다. 2021년은 전자는 했지만 후자는 하지 못했습니다.
마치며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쓸 때 세계는 빠르게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증기선과 기차가 대륙을 연결했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됐습니다. 150년이 지났습니다. 기술은 세계를 좁혔지만 이해는 여전히 멀었습니다. 1956년은 여행을 정복으로 봤습니다. 1989년은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은 중심을 흔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2021년은 특권을 인식했습니다. 150년 동안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돌고 있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인가, 여행자인가? 우리는 세계를 소비하는가, 이해하는가? 포그는 80일 만에 세계를 돌았습니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평생이 걸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포그입니다. 단지 더 예의 바른 포그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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