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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스크린을 만나다

'노트르담의 꼽추' 무성영화부터 디즈니까지- 쿠아지모도의 얼굴, 에스메랄다의 선택, 프롤로의 욕망, 비극과 희망 사이

by finderlog 2026.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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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빅토르 위고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습니다. 종지기 쿠아지모도는 등이 굽고 얼굴이 흉측한 데다 한쪽 눈마저 보이지 않았고, 집시 무희 에스메랄다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리에서 춤을 췄습니다.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는 경건한 성직자였지만 에스메랄다를 욕망했고, 그 욕망이 결국 모두를 파괴했습니다. 원작의 결말은 비극입니다. 에스메랄다는 교수형 당하고, 쿠아지모도는 그녀의 시신을 안은 채 죽으며, 프롤로는 쿠아지모도에게 밀려 떨어져 죽습니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들은 이 결말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는 쿠아지모도를 순교자로 만들었고, 할리우드 황금기는 에스메랄다를 살렸으며, 디즈니는 모두를 살려 해피엔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쿠아지모도는 무서운 괴물에서 불쌍한 피해자가 됐고, 에스메랄다는 수동적 희생자에서 주체적 여성이 됐으며, 프롤로는 단순한 악당에서 복잡한 인간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시대를 넘어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진짜 추한 것은 무엇인가? 쿠아지모도의 얼굴인가, 프롤로의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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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아지모도의 얼굴 - 공포의 예술에서 디즈니의 귀여움까지

론 채니의 쿠아지모도(1923)는 전설이 됐습니다. "천 개 얼굴의 사나이"로 불렸던 채니는 자신의 메이크업을 직접 디자인했는데, 고무 덩어리를 얼굴에 붙이고 철사로 코를 찌그러뜨렸으며 한쪽 눈에 고무 패치를 붙여 시야를 차단했습니다. 등을 굽히기 위해서는 가죽 하네스를 직접 만들어 몸에 착용했는데, 무겁고 고통스러웠음에도 촬영 내내, 심지어 휴식 시간에도 벗지 않았습니다. 그의 완벽주의로 탄생한 쿠아지모도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고 어떤 이들은 극장을 나갔다고 합니다.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시각적 충격은 더욱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채니는 동시에 쿠아지모도를 깊이 있는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에스메랄다(파트시 루스 밀러)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하다가 그녀가 친절하게 건네주자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채니는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쿠아지모도의 고독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는 대성당 지붕에서 뜨거운 용융 납을 쏟아 공격자들을 물리치며 에스메랄다를 구해내는 영웅이 됐습니다. 찰스 로튼의 쿠아지모도(1939)는 덜 무섭고 더 슬펐습니다. 로튼의 메이크업도 훌륭했지만 채니만큼 극단적이지 않았고, 그의 쿠아지모도는 불쌍해 보이며 더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했습니다. 로튼은 쿠아지모도를 단순히 선한 존재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아이 같았고 때로는 분노했으며 때로는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쿠아지모도가 형틀에 묶여 채찍질당하는 것입니다. 군중이 그를 조롱하는 가운데 "물! 물!"이라고 외쳐도 아무도 주지 않다가, 그때 에스메랄다(모린 오하라)가 나타나 물을 건네줬습니다. 로튼의 얼굴을 흘러내린 눈물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처럼 보였습니다. 앤서니 퀸의 쿠아지모도(1956)는 더욱 인간적이었습니다. 앞선 두 버전보다 메이크업이 덜 극단적이었고 그의 얼굴은 흉측하기보다 불행해 보였는데, 프랑스에서 만든 이 버전은 원작에 더 충실하게 쿠아지모도를 괴물보다는 사회의 희생자로 그려냈습니다. 앤서니 홉킨스의 쿠아지모도(1982)는 지적이었습니다. 홉킨스는 쿠아지모도를 단순히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었고, 이 TV 영화는 그가 왜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지, 왜 프롤로를 따르는지 내면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1996)의 쿠아지모도(톰 헐스 목소리)는 심지어 귀여웠습니다.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얼굴과 크고 순수한 눈을 가진 그는 여전히 곱사등이었지만 거의 만화 캐릭터에 가까웠습니다. 디즈니의 쿠아지모도는 종탑에서 내려가 사람들 사이를 걷고 축제에 참여하기를 꿈꿨고, 그가 부르는 노래들은 그 갈망과 외로움을 담아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디즈니를 비판했습니다. 쿠아지모도를 너무 귀엽게 만들어서 원작의 핵심 메시지, 즉 외모가 아무리 흉측해도 내면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희석됐기 때문입니다.

2. 에스메랄다의 선택 - 운명의 희생양에서 주체적 여성으로

원작에서 에스메랄다는 비극적 인물입니다. 아름답지만 무력하고, 사랑하지만 보답받지 못하며, 결국 죽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그녀를 집시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회에 파괴당하는 희생자로 그렸습니다. 무성영화 시대의 에스메랄다(파트시 루스 밀러)는 아름답고 순수하며 위험에 처한 전형적인 여주인공이었고, 구해야 할 대상으로 그려졌습니다. 결말에서 그녀는 살아남아 사랑하는 페뷔스 대위와 함께 떠났고, 홀로 남은 쿠아지모도를 관객들은 영웅으로 기억했습니다. 모린 오하라의 에스메랄다는 더 강했습니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였던 오하라는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당한 에스메랄다를 연기했습니다. 불의에 맞서고 쿠아지모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말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할리우드 버전도 그녀를 살렸는데, 처형 직전에 구출되어 루이 11세의 사면을 받은 그녀는 페뷔스와 함께 떠났고 쿠아지모도만 홀로 종을 울렸습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의 에스메랄다(1956)는 가장 관능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섹스 심벌이었던 롤로브리지다의 에스메랄다는 춤을 출 때 유혹적이었으며, 프랑스 버전은 프롤로의 욕망을 더 명확히 드러내고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이 그를 파괴하는 과정을 강조했습니다. 레슬리앤 다운의 에스메랄다는 지적이었습니다. TV 영화는 그녀를 단순히 예쁜 무희가 아니라 집시 공동체를 이해하고 사회적 불의를 인식하며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는 사유하는 여성으로 그려냈습니다. 디즈니의 에스메랄다(데미 무어 목소리)는 가장 주체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페미니즘을 반영해 만들어진 이 캐릭터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약자를 보호하며 프롤로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강인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쿠아지모도를 친구로 사랑했지만 로맨틱한 감정을 갖지 않았고, 대신 페뷔스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디즈니는 쿠아지모도가 이를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축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말에서 모두가 살아남았고 쿠아지모도는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환영받았는데, 비평가들은 이것이 원작의 핵심, 즉 세상은 잔인하며 선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빛으로 덮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3. 프롤로의 욕망 - 성직자의 위선, 각색마다 달라진 무게

클로드 프롤로는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성직자이지만 육욕에 시달리고, 경건하지만 위선적이며, 에스메랄다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인물입니다. 원작에서 그는 분명한 악당이지만 동시에 비극적 존재입니다. 초기 영화들은 이 복잡성을 단순화했습니다. 브랜든 허스트의 프롤로는 거의 전형적인 악당이었고, 에스메랄다를 욕망하다가 가질 수 없게 되자 파괴하려 드는 인물로 그 내적 갈등은 깊이 탐구되지 않았습니다. 서 세드릭 하드윅의 프롤로(1939)는 더 음침했습니다. 냉혹하고 계산적인 그는 권력을 쥐고 무자비하게 사용했으며,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욕망과 증오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이 버전은 프롤로와 쿠아지모도의 관계도 잘 그려냈는데, 프롤로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쿠아지모도가 그가 에스메랄다를 해치려 하자 등을 돌리는 장면은 쿠아지모도의 도덕적 각성을 보여주는 핵심 순간이었습니다. 알랭 퀴니의 프롤로(1956)는 가장 복잡했습니다. 프랑스 버전은 그의 내적 갈등을 깊이 탐구하여, 평생 금욕적으로 살아온 그가 에스메랄다로 인해 모든 신념이 무너지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욕망한다는 사실을 증오했고, 그 증오를 에스메랄다에게 투사했습니다. 로버트 파월의 프롤로(1982)도 비슷한 방향이었습니다. 완전한 악당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싸우는 인간으로서 구원받고 싶지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비극적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디즈니의 프롤로(토니 제이 목소리)는 가장 무서웠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어둡고 복잡한 악당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집시들을 박해하고 에스메랄다를 죽이려 하며 파리를 불태우려 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장면은 프롤로가 벽난로 앞에서 에스메랄다의 환영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장면이었는데, 성적 욕망과 종교적 위선, 광기가 뒤섞인 이 장면은 어린이 영화치고는 지나치게 어둡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동시에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강렬한 악당 노래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프롤로는 결국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떨어져 죽었고, 납 조각상이 그를 심판하듯 내려다봤습니다.

4. 비극에서 희망으로 - 원작의 결말을 바꾼 이유

빅토르 위고의 원작 결말은 잔인합니다. 에스메랄다는 교수형당하고, 쿠아지모도는 그녀의 시신과 함께 죽으며, 몇 년 후 그들의 뼈가 나란히 발견됩니다.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고, 사랑은 보답받지 못했으며,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위고는 이것이 현실 사회의 잔인함을 보여준다고 믿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집시를 박해하며 권력자의 위선을 묵인하는 사회에서, 에스메랄다와 쿠아지모도는 그 구조의 희생자였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영화가 이 결말을 바꿨습니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디즈니까지 에스메랄다를 살리거나 쿠아지모도를 영웅으로 만들거나 해피엔딩을 붙였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관객입니다.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무고한 에스메랄다가 죽는 것은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할리우드의 공식입니다. 악당은 벌 받아야 하고, 영웅은 보상받아야 하며, 사랑은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즈니는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모두가 살아남았고, 쿠아지모도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프롤로만 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외모가 달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고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약화시켰습니다. 위고는 세상이 잔인하다고 했지만 디즈니는 세상이 결국 선하다고 했고, 위고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디즈니는 개인이 용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가는 관점의 문제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두 가지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

빅토르 위고는 제목을 신중하게 선택했습니다. 프랑스어 원제는 '노트르담 드 파리'로, 대성당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영어 번역은 '노트르담의 꼽추'가 됐고 이야기는 개인에 관한 것으로 좁혀졌습니다. 위고는 사회와 역사와 권력에 관해 쓰고 싶었지만, 영화들은 쿠아지모도 개인의 사랑과 외모에 집중했습니다. 그 변화는 의미심장합니다. 론 채니의 쿠아지모도는 다름에 대한 공포를 가르쳤고, 찰스 로튼의 쿠아지모도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동정을 가르쳤으며, 디즈니의 쿠아지모도는 외모가 달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원작의 질문은 19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추한 것은 무엇인가? 쿠아지모도의 얼굴인가, 프롤로의 마음인가, 에스메랄다를 죽인 사회인가? 위고의 답, 영화들의 답, 그리고 각자의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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