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이 첫 문장은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조차도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1877년 출간된 '안나 카레니나'에는 당시 러시아 귀족 사회의 이면이 담겨 있습니다. 아름답고 지적인 안나 카레니나는 그 시절 귀족 여성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사교계 스타로 추앙받다가 카레닌 백작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으며 겉보기에 완벽한 삶을 영위하던 그녀의 모든 것은,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젊고 잘생긴 군 장교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완전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안나는 선택 해야 했습니다. 남편과 아들, 사회적 지위와 안전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브론스키와의 열정과 자유를 택할 것인가. 안나는 브론스키를 선택했고 사회는 그녀를 심판했습니다. 러시아 귀족 사회는 그녀를 추방했고 친구들은 그녀를 외면했으며 아들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브론스키는 여전히 사교계에 출입했지만 안나는 철저히 고립됐습니다. 이렇게 원작의 결말은 비극입니다. 기차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150년 동안 소설이 영화화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됐습니다. 안나의 선택은 옳았는가? 1935년 그레타 가르보는 안나를 비극적 영웅으로 만들었고, 1948년 비비안 리는 고통받는 여성으로 그렸으며, 2012년 키이라 나이틀리는 사회의 희생자로 해석됐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안나는 죄인에서 희생자가 됐고 브론스키는 낭만적 영웅에서 이기적인 남자가 됐으며 질문의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죄인가? 그리고 왜 여성만 벌을 받는가?

1. 안나의 선택에 대한 시대별 해석
그레타 가르보의 안나(1935)는 할리우드가 빚어낸 비극적 여신이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추었지만 처음부터 불행했던 그녀는, 카레닌(베질 래스본)과의 결혼 생활에서 질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나를 소유물로 대했고 사회적 명성을 중시했으며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론스키(프레드릭 마치)가 나타났을 때 가르보의 안나는 비로소 깨어났습니다. 오랫동안 꺼져 있던 생기를 되찾으며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 그녀가 사교계에서 냉대받는 장면은 더욱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영화는 안나를 동정하는 시선으로 끝까지 따라가며 마치 고통받는 성녀처럼 그녀를 그려냈고, 그녀가 기차에 몸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 그 얼굴은 마침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듯 평화로웠습니다. 비비안 리의 안나(1948)는 더 복잡한 인물이었습니다. 줄리앙 듀비비에 감독의 이 영화에서 비비안 리는 안나를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열정적이고 충동적이며 감정적인 한 인간으로 연기했습니다. 덕분에 안나의 내적 갈등이 더 실제적이고 섬세하게 담겼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고통스러워하던 리의 안나는 브론스키가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하며 점점 질투와 집착에 사로잡혀갔고 그럴수록 더욱 불안정해졌습니다. 소피 마르소의 안나(1997)에는 프랑스적 감수성이 담겼습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의 버전에서 마르소는 안나를 관능적이고 열정적인 자유로운 영혼으로 연기했습니다. 1997년 버전은 안나와 브론스키(션 빈)의 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이고 강렬하며 거의 중독적으로 묘사됐습니다. 영화는 사회의 위선을 강조했습니다.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아무런 벌을 받지 않은 브론스키와, 오직 홀로 추방당한 안나를 대비시키며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의 안나(2012)는 가장 현대적인 해석이었습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이 작품을 무대극 형식으로 연출했습니다. 세트는 극장 무대로 구성됐고 배경이 전환되면서 배우들이 무대를 드나드는 방식이었는데, 이 혁신적인 연출은 동시에 매우 상징적이었습니다. 러시아 귀족 사회의 모든 것이 연기와 위선으로 이루어진 가운데 오직 안나만이 진심이라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2. 브론스키는 영웅인가 이기적인 남자인가
원작에서 브론스키는 낭만적인 인물입니다. 안나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여 그녀를 위해 군 경력을 포기하고 함께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변해갑니다. 사교계를 그리워하고 제한된 삶에 답답함을 느끼며 안나의 질투에 지치기 시작합니다. 반면1935년 프레드릭 마치의 브론스키는 끝까지 안나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충실한 낭만적 영웅이었습니다. 완벽해 보일 만큼, 어쩌면 너무 비현실적일 만큼 흠 없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영화의 시선에서 그는 무력했을 뿐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고 모든 비극의 책임은 사회에 있었습니다. 1948년 키에론 무어의 브론스키는 더 인간적이었습니다. 안나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삶을 원했던 그는 사교계를 그리워했고 안나의 집착에 점점 지쳐갔습니다. 악당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한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997년 션 빈의 브론스키는 가장 열정적이었습니다. 안나와의 관계에서 육체적으로 강렬하게 중독된 그는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서 지쳐갔고, 안나의 불안정함을 감당하지 못하며 서서히 거리를 뒀습니다. 농장 관리나 지방 정치 같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이 안나는 더욱 외로워졌고, 이것이 그녀의 비극을 가속화했습니다. 2012년 애런 테일러존슨의 브론스키는 가장 젊고 미숙한 인물이었습니다. 안나를 원했지만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가 모든 것을 잃으리라는 것도 사회가 그녀를 파괴하리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안나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한지 감당하지 못한 그에게 영화는 냉정한 시선을 보냅니다. 악당도 영웅도 아닌 채, 자신의 특권으로 자신만을 지키고 안나를 구하지 못한 인물이라고요.
3. 사회의 심판은 왜 안나에게만 행했나
이 소설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핵심은 이중 잣대에 있습니다. 브론스키는 불륜을 저질렀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사교계에 출입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경마를 즐깁니다. 파괴되는 것은 안나 뿐이라서 그녀의 비극이 더욱 대비되지요. 모든 영화 버전이 이 불공평함을 강조했지만 그 온도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1935년 작품에서는 안나가 오페라에서 굴욕 당하는 장면을 충격적으로 담아냈지만 사회를 완전히 공격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 할리우드는 여전히 보수적이었고 불륜에는 반드시 처벌이 따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1948년에는 더 노골적으로 안나의 사회적 죽음을 묘사했습니다. 아들 세료자를 만나려는 안나를 카레닌이 거부하는 장면에서 리의 연기는 보는 이의 가슴을 무너뜨렸고, 모든 버전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그려졌습니다. 1997년 영화는 가장 크게 분노를 드러냅니다. 마르소의 안나는 사회의 위선을 직접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왜 나만? 왜 브론스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는가?" 영화는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습니다. 2012년은 안나의 비극을 가장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조 라이트는 러시아 귀족 사회를 무대극으로 구현하여, 안나가 추방될 때 밝고 화려하던 무대가 어둡고 좁은 공간으로 변하며 그녀를 옥죄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4. 마치며
톨스토이는 1910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인과 오랫동안 갈등을 겪던 그가 가출했다가 열흘만에 작은 시골 기차역에서 폐렴으로 객사한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결혼 불화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결혼을 낭만이 아닌 책임과 갈등의 현실로 그리게 하고, 안나를 향한 동정과 도덕적 심판이 공존하는 복합적 시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쓰면서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안나를 심판해야 하는가, 동정해야 하는가. 기독교적 도덕을 굳게 믿으면서도 사회의 위선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안나를 파괴하면서도 독자들이 그녀를 사랑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소설의 구조는 이중적입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행한 사랑을 레빈과 키티의 행복한 결혼과 나란히 배치하며 톨스토이는 올바른 길이 어디인지를 제시하려 했습니다. 의무와 가족, 단순한 삶이 그 답이라고요. 그러나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레빈이 아니라 안나라는 점이 우리를 자꾸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2026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안나의 선택은 옳았는가. 소설의 첫 문장도 자꾸 곱씹게 됩니다.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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