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6월, 파리의 바리케이드가 무너졌습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은 총에 맞아 쓰러졌고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실패한 봉기를 목격했고 30년 후에 소설로 써냈습니다. 레 미제라블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죽은 젊은이들의 이야기입니다. 1862년 출간 이후 레미제라블은 여러 차례 영화화됐습니다. 각 영화는 조금씩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1935년 할리우드에서 만든 작품은 "한 남자가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물었고, 1998년은 "법과 자비 중 무엇이 옳은가?"를 물었으며, 2012년 뮤지컬은 "혁명은 헛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1. 장 발장의 변화
1935년 할리우드 버전에서 찰스 로튼의 장 발장은 처음부터 선했습니다. 영화는 그를 피해자로 그렸는데요, 그는 단지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고 사회가 그를 범죄자로 만든 것입니다. 미리엘 주교(세드릭 하드윅)와의 만남은 거의 종교적 회심처럼 촬영됐습니다. 빛이 위에서 비췄고 음악은 웅장했으며 장 발장은 회개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후 그는 완벽한 기독교인처럼 행동했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인간적이지 않았지만, 대공황 시대에 도덕적 확실성과 구원의 가능성은 관객에게 위안을 주었습니다. 1998년 빌 어거스트 감독 버전에서 리암 니슨의 장 발장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19년 동안 쌓인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주교의 은촛대를 받고도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들렌 시장이 되어서도 악몽을 꾸고 자베르를 두려워했으며 자신이 진짜 변했는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리케이드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마리우스를 구하는 장면은 극적인 반전처럼 연출됩니다. 코제트의 행복을 위한 진정한 희생이자 구원의 순간이었습니다. 2012년 톰 후퍼 감독의 뮤지컬 스타일의 영화에서 휴 잭맨의 장 발장은 또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What Have I Done?"을 부르는 장 발장은 정체성이 붕괴하는 실존적 위기에 빠진 인물이었고, "Who Am I?"에서는 무고한 남자를 구하면 자신이 감옥에 가야 하는 딜레마를 온몸으로 표현했습니다. 부성애가 극진한 인물로,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 죽음까지 모든 행동이 그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Suddenly"를 부르며 고백합니다. "갑자기 내 인생에 의미가 생겼다."
2. 자베르의 비극
자베르는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는 악당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법을 믿었고 법이 정의라고 확신했는데 그 확신이 그를 파괴했습니다. 그런데 1935년 프레드릭 마치의 자베르는 거의 악당이었습니다. 기계처럼 법을 집행했고 인간적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판틴이 굶주린 딸을 위해 몸을 팔았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자살도 관객들은 자업자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998년 제프리 러시의 자베르는 훨씬 복잡했습니다. 감옥에서 태어나 혼돈 속에서 자랐고 법만이 그를 그 운명에서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법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그는 장 발장이 훌륭한 일을 한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선한 일을 해도, 당신은 범죄자입니다." 2012년 러셀 크로우의 자베르는 가장 비극적이었습니다. "Stars"를 부르는 자베르는 별들이 하늘에서 질서를 유지하듯 자신은 땅에서 질서를 유지한다고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확신에 차 있던 만큼, "Javert's Suicide"를 노래할 때는 법에 배신당한 절망에 잠식되고 세계관이 붕괴되게 되지요.
3. 혁명의 연출
1935년 버전은 혁명 장면을 최소화했습니다. 소련 혁명이 얼마 전이었고 미국 노동운동이 격화되던 시대에 혁명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은 위험했습니다. 학생들은 이름도 없었고 바리케이드는 단지 배경일뿐이었습니다. 영화는 개인의 구원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1998년 버전은 혁명을 더 자세히 다루면서도 양가적이었습니다. 앙졸라(마이클 말로니)는 이상주의적으로 그려졌지만 시민들은 창문을 닫고 집에 숨었습니다. 전투 장면도 영웅적이지 않았습니다. 총에 맞아 쓰러지고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가브로슈 소년이 총알을 주우려다 저격당해 천천히 죽어가는 장면은 특히 잔인했습니다. 학생들은 용감했지만 순진했고 희생은 고귀했지만 헛됐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판단을 맡겼습니다. 2012년 뮤지컬 버전은 혁명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학생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관객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고, "One Day More"는 모든 캐릭터의 감정이 하나의 음악으로 폭발하며 압도했습니다. 에필로그에서 죽은 캐릭터들이 다시 모여 노래할 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꿈은 살아있다고.
4. 용서의 무게
1935년 버전의 답은 명확했습니다. 자비가 옳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옳은 길과 틀린 길이 분명히 나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1998년 영화는 보다 복잡했습니다. 모든 범죄자에게 자비를 베풀면 법이 무슨 의미인가? 법은 모두에게 평등해야 하고 예외를 만들면 정의가 무너집니다. 장 발장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무고한 남자를 구하면 코제트는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합니다. 무엇이 더 큰 선인가? 영화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판단해야 했습니다. 2012년 뮤지컬 버전은 감정으로 답했습니다. "Bring Him Home"에서 휴 잭맨은 속삭이듯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대신 데려가고 마리우스를 구해달라는 그의 기도는 법도 논리도 아닌 순수한 애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장 발장은 코제트와 마리우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눈을 감습니다. "To love another person is to see the face of God."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마치며
빅토르 위고는 소설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법과 관습으로 인한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는 한 이 책은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그의 말대로, 160년이 지났지만 사소한 범죄로 인생이 망가지는 사람들, 가난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죽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빵을 훔치고 은촛대를 받는 장 발장,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자베르, 바리케이드에서 노래하는 학생들은 언제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답을 주지 않았지만 희망은 얘기했습니다. 한 사람의 자비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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