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0년경에 쓴 햄릿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고 가장 많이 영화화되며 가장 많이 인용되는 희곡입니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는데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말합니다. "나는 네 숙부에게 살해당했다. 복수하라." 햄릿은 복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망설입니다. 유령이 진실을 말하는가?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복수 후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는 미친 척하고 연극을 만들고 오필리아를 거부하고 어머니를 비난하고 폴로니우스를 죽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두가 죽는 결말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반열에 올랐습니다. 400년이 넘었지만 햄릿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1948년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은 프로이트적이었고, 1990년 멜 깁슨의 햄릿은 액션 스타였으며, 1996년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은 완전판이었고, 2000년 에단 호크의 햄릿은 현대 뉴욕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곧 개봉하는 (2026.2.25 예정) 영화 헴넷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햄릿을 쓴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어린 아들 헴넷이 죽고 그 상실감과 슬픔을 다룬 이야기로, 셰익스피어가 아들의 죽음을 극복하고 걸작인 햄릿을 창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햄릿은 회자되고, 재탄생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여전히 햄릿을 이야기하게 될까요?

1. 햄릿의 광기 - "나는 미친 척한다", 그런데 정말?
햄릿은 미친 척합니다. 오필리아에게 이상하게 행동하고, 폴로니우스를 조롱하고,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유령과 대화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연기인가, 진짜 광기인가? 셰익스피어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1948)은 심리적이었습니다. 감독이자 주연이었던 올리비에는 햄릿을 프로이트 렌즈로 해석했습니다. 흑백으로 촬영된 엘시노어 성은 미로 같았고, 카메라는 긴 복도와 나선형 계단을 따라갔습니다. 올리비에의 햄릿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행동을 미루고 끝없이 생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햄릿과 거트루드(아일린 헐리)의 관계였습니다. 올리비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강조하며 침실 장면에서 햄릿이 어머니에게 거의 키스할 뻔하게 연출했는데, 1948년 당시의 관객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올리비에의 광기는 내면적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미친 척했지만 내면에서는 진짜 고통받는 인물이었고, "To be, or not to be" 독백은 거의 자살 충동처럼 들렸습니다. 멜 깁슨의 햄릿(1990)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시 액션 스타였던 깁슨과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햄릿을 더 육체적이고 활동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깁슨의 햄릿은 우유부단하지 않았습니다. 분노하고 활동적이며 거의 폭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글렌 클로즈(거트루드)와의 침실 장면은 올리비에보다 더 강렬했는데, 햄릿이 어머니를 침대에 던지고 꾸짖는 장면에서 클로즈는 진짜로 겁에 질려 보였습니다. 깁슨의 광기는 표면적이었습니다. 관객은 항상 그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클로디어스를 향한 분노만큼은 진짜였습니다. 망설임은 전략일 뿐이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의 햄릿(1996)은 가장 완전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대사를 포함한 4시간짜리 작품에서 브래너는 햄릿을 지적이고 계산적으로 연기했습니다. 미친 척하는 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함정을 만드는 인물이었는데, 클로디어스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연극 속 연극"을 만드는 장면은 탐정 같은 정교함을 보여줬습니다. 동시에 거울 앞에서 이뤄진 "To be, or not to be" 독백에서 브래너는 자신을 바라보며 죽음을 고민하는 실존적 고통을 담아냈습니다. 에단 호크의 햄릿(2000)은 가장 현대적이었습니다.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은 햄릿을 2000년 뉴욕 맨해튼으로 옮겼는데, 덴마크 왕국은 "덴마크 코퍼레이션"이 됐고 엘시노어 성은 호텔이 됐으며 햄릿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모든 것을 촬영하는 예술가였습니다. "To be, or not to be"는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의 "액션" 코너 앞에서 이뤄졌는데, 행동하지 못하는 햄릿이 액션 영화들에 둘러싸인 이 장면은 현대적 아이러니였습니다. 호크의 광기는 소외였습니다. 세상과 단절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외로움이었습니다.
2. 오필리아의 비극 - 남자들의 도구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오필리아는 햄릿에서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햄릿을 사랑하지만 거부당하고 아버지 폴로니우스에 의해 스파이 짓을 해야했고, 결국은 아버지는 햄릿에게 죽고, 그녀 자신은 미쳐서 물에 빠져 죽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녀에게 많은 대사를 주지 않았습니다. 주로 반응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미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집니다. 1948년 작품의 오필리아(진 시몬스)는 전형적인 희생자였습니다. 순진하고 아름다우며 무력한 그녀는 꽃을 들고 성을 떠돌며 노래를 부르는 광기 장면에서 거의 유령 같았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화면에 나오지 않았고 거트루드가 묘사했습니다. 시냇가에서 꽃을 따다 물에 빠져 노래를 부르며 가라앉았다고. 아름답지만 수동적인 죽음이었습니다. 1990년 작품의 오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는 더 감정적이었습니다. 햄릿이 "수녀원으로 가라!"라고 소리칠 때 그녀는 상처받고 혼란스러워하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광기 장면에서 꽃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히스테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그녀가 물에 빠지는 순간도 카메라가 직접 포착해 보여줬습니다. 1996년 작품의 오필리아(케이트 윈슬렛)는 가장 복잡했습니다. 햄릿을 사랑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충성하며 둘 사이에서 찢기는 의지를 가진 여성으로 연기됐습니다. 광기 장면에서 구속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며 거의 자해하듯 행동하는 모습은 억압된 여성성의 폭발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사고인지 자살인지 정확히 알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그려졌습니다. 2000년 작품의 오필리아(줄리아 스타일스)는 사진작가로 자신의 예술을 가진 현대적 여성이었지만 그녀도 남자들에게 조종당했습니다. 광기 장면은 조용했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사진을 찢으며 조용히 울고 내면으로 무너지는 모습은 현대적 우울증이었습니다. 호텔 분수에 빠진 그녀의 몸 위로 도시의 불빛이 물에 반사되는 장면은 아름답지만 차갑고 외로웠습니다.
3. 독백의 무게 - 복수의 정당성과 행동의 의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백이지만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지만, 더 깊이 보면 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복수해야 하는가, 참아야 하는가? 움직이는 것이 옳은가, 순응하는 것이 옳은가? 올리비에는 이 독백을 엘시노어 성의 절벽에서 촬영했습니다. 파도가 부딪히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거의 최면적인 목소리로 읊는 이 장면은 실존적 위기였습니다. 삶의 고통과 죽음의 불확실성 사이에서 진지하게 갈등하는 철학적 고통이었습니다. 깁슨은 이 독백을 성의 지하 묘지에서 촬영했습니다. 관들 사이를 걷는 햄릿에게 죽음은 추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를 둘러싼 현실이었습니다. 거의 분노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는 행동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남자의 좌절을 담았습니다. 브래너는 이 독백을 거울 앞에서 촬영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차분하지만 고통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자신의 우유부단함을 인식하고 그것에 괴로워하며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자기 대면이었습니다. 호크는 이 독백을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에서 촬영했습니다. 액션 영화 코너를 지나가며 거의 중얼거림처럼 말하는 이 장면은 현대 세계에서 길을 잃고 행동이 무의미해 보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실존적 위기를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차이가 있지만 결국 모든 버전에서 공통된 점은 이것입니다. 햄릿은 망설이고, 그 망설임 끝에 행동하지만 너무 늦었고, 복수는 이루어지지만 승리가 아니라 재앙으로 끝납니다.
4. 헴넷 - 비극을 쓴 아버지의 비극
국내 개봉을 코앞에 둔 헴넷은 햄릿이 아니라 햄릿을 쓴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 셰익스피어는 1596년 1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자식을 잃은 비극을 예술로 승화해 햄릿을 탄생시킨 셰익스피어와 아내 아녜스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명확하게 메타적입니다. 햄릿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햄릿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상기시킵니다. 햄릿은 추상적인 고전이 아니라 한 아버지의 고통에서 나왔다는 것을. 셰익스피어도 울었고 후회했으며 아들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400년 후에도 우리를 울리는 작품이 됐습니다.
마치며 - "죽느냐 사느냐", 우리는 여전히 답하려 한다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야기 햄릿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복수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행동하고 싶지만 두려워하며, 진실을 알고 싶지만 확신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현대의 햄릿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답하려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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