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쓴 이 소설은 100년이 넘도록 수십 번 영화화되어 왔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오페라의 유령은 영화보다 뮤지컬로 더 익숙합니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운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의 '정본'처럼 여겨져 왔고, 2004년 영화는 바로 이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입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시대에 나온 다른 영화들에서는 다른 해석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영화는 순수한 공포물로, 어떤 영화는 비극적 로맨스로, 또 어떤 영화는 뮤지컬 스펙터클로 그렸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팬텀이라는 캐릭터가 시대에 따라 완전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는 공포영화의 괴물이었고, 1940년대에는 동정받는 비극적 인물이었으며, 2000년대에는 거의 로맨틱 히어로가 됐습니다. 그의 얼굴도 점점 덜 괴물스러워졌습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팬텀은 더 인간적이고, 더 매력적이고, 더 이해받을 만한 존재가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다름'과 '기형'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까요? 아니면 로맨스가 공포를 잠식한 것일까요?

1. 괴물에서 로맨틱 히어로로: 팬텀의 변신
1925년 루퍼트 줄리언 감독의 무성영화는 공포영화의 고전입니다. 론 채니가 연기한 팬텀은 진짜 괴물이었습니다. 채니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진 남자"로 불렸고, 자신의 메이크업을 직접 디자인했습니다. 철사로 코를 위로 당겨 올리고, 눈 밑에 검은 원을 그렸으며, 입을 왜곡시키기 위해 치아에 장치를 끼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팬텀의 가면이 벗겨지는 장면은 영화사에서 유명한 공포 씬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크리스틴(메리 필빈)이 가면을 벗기고, 카메라가 팬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순간, 극장의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고 합니다. 론 채니의 팬텀은 동정받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위협적이고, 폭력적이며, 거의 악마 같았습니다. 크리스틴을 납치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오페라 하우스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그를 괴물로 그렸고, 관객은 그를 두려워했습니다. 1943년 아서 루빈 감독의 버전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클로드 레인스가 연기한 팬텀은 훨씬 인간적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팬텀이 어디서 출발되었는지 이야기가 추가됐는데, 원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악덕 출판업자에게 음악을 도둑맞았고 복수하려다 얼굴에 산을 뒤집어쓰고 기형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백스토리는 중요했습니다. 팬텀은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 아니라 피해자였다는 관점이 들어가니, 훨씬 덜 무섭고,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메이크업 표현도 덜 극단적이었습니다. 얼굴 한쪽이 흉터로 덮여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가면이 벗겨지는 장면도 1925년처럼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관객은 놀라긴 했지만,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팬텀이 크리스틴을 납치한 것이 비록 왜곡되고 집착적이지만 그의 동기는 사랑이었고, 순수하므로 관객이 그를 동정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조엘 슈마허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을 영화화했습니다. 제라드 버틀러의 팬텀은 거의 로맨틱 히어로였습니다. 그는 잘생겼고, 카리스마 넘쳤으며, 목소리는 섹시했습니다. 얼굴 기형도 최소화해서 얼굴 오른쪽에 화상 흉터가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뮤지컬 버전은 처음부터 팬텀을 로맨틱한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팬텀과 크리스틴 사이에 진짜 로맨스가 있길 원했는데, 만약 팬텀이 정말 괴물처럼 보인다면, 크리스틴이 그에게 끌리는 것이 설득력이 없어집니다. 뮤지컬을 가져온 영화에서도 제라드 버틀러의 팬텀은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Music of the Night"를 부를 때의 그는 아름답기까지 했죠. 많은 관객들, 특히 젊은 여성 관객들이 팬텀을 응원했습니다. 심지어 크리스틴이 라울을 선택하는 것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2. 크리스틴의 선택
크리스틴은 아름다운 주인공인 그 자체로 많은 사랑을 받지만, 동시에 수동적인 캐릭터로 비판받습니다. 그녀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각 영화마다 달랐습니다. 1925년 메리 필빈의 연기는 무성영화 특유의 과장된 스타일이었고 히스테리컬 했습니다. 팬텀을 볼 때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기절하고, 손을 휘저었습니다. 라울(노만 케리)은 전형적인 영웅이었습니다. 잘생기고, 용감하고, 크리스틴을 구하려 합니다. 선택은 간단했습니다. 괴물이냐 왕자님이냐. 크리스틴은 당연히 라울을 선택했고, 관객은 안도했습니다. 1943년 버전은 더 복잡했습니다. 수잔나 포스터의 크리스틴은 팬텀에게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그가 괴물이지만, 동시에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그를 두려워했지만, 동시에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틴의 선택은 도덕적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팬텀은 나쁜 사람이지만 그녀에게 친절했고 스타로 만들어줬습니다. 반면 라울은 좋은 사람이지만, 그녀의 커리어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크리스틴은 라울을 선택했는데, 이것은 사랑의 승리라기보다는 정상성의 선택이었습니다. 안전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고, 사회가 인정하는 관계를 선택한 것이죠. 2004년 영화는 가장 논란이 많았습니다. 에미 로섬의 크리스틴은 팬텀에게 진짜로 끌렸습니다. 팬텀의 음악, 그의 열정, 그의 어둠. 모든 것이 그녀를 유혹했습니다. "Past the Point of No Return"을 부르는 장면에서 둘 사이의 연애적 긴장감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라울(패트릭 윌슨)은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크리스틴을 사랑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하는 답답하고 매력이 떨어지게 묘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을 선택하는 결론은 같았지만요. 크리스틴은 라울과 떠났지만, 팬텀의 반지를 평생 간직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녀는 라울을 선택했지만, 팬텀을 잊지 못한 것입니다.
3. 음악과 미장센으로 장르 표현
오페라의 유령은 독특한 작품입니다. 공포물인가, 로맨스인가? 각 영화는 이 장르 사이에서 다른 균형을 찾았습니다. 1925년 버전은 명백히 공포영화였습니다.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음악은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극장에서 연주했습니다. 영화 자체는 공포에 집중했습니다. 어두운 지하 통로, 촛불, 그림자, 해골 같은 얼굴. 모든 것이 관객을 겁주기 위해 디자인됐습니다. 가장 유명한 장면은 마스커레이드 파티입니다. 팬텀이 죽음의 형상(Red Death)으로 분장하고 나타납니다. 붉은 해골 가면, 검은 망토, 극장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은 공포영화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1943년에는 음악을 더 강조했습니다. 테크니컬러와 사운드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2004년에 와서는 완전히 뮤지컬이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전달됐습니다. "The Phantom of the Opera", "Music of the Night", "All I Ask of You" - 이 곡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 넘버인데, 영화는 이를 충실히 담아냈습니다. 제라드 버틀러의 목소리는 클래식하게 훈련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의 팬텀은 완벽한 오페라 가수가 아니라, 거칠고 열정적인 뮤지션이었습니다. 에미 로섬은 실제로 클래식 소프라노 훈련을 받았고, 그녀는 정말이지 천상의 목소리라는 찬사가 어울리는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했습니다.
4. 누구를 응원할까
오페라의 유령을 볼 때, 관객은 누구를 응원해야 할까요? 이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각 시대마다도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영화적 의도에 의해서, 1925년 관객들은 크리스틴과 라울을 응원했습니다. 팬텀은 악당이었고, 그가 죽거나 패배하는 것이 정의였습니다. 1943년 관객들은 더 복잡한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팬텀은 나쁜 짓을 했지만, 그에게도 이유가 있었고 피해자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팬텀은 샹들리에를 떨어뜨리고, 혼란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의 운명은 불확실합니다. 죽었는지, 도망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애매함은 의도적이었는데, 영화는 관객이 팬텀에게 동정을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2004년 관객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많이들 팬텀을 응원했습니다. 일부 팬들은 팬텀과 크리스틴이 함께 끝나는 팬픽션을 쓰기도 했지요. 일부 비평가들은 이 현상을 두고 왜곡된 관계를 낭만화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크리스틴은 라울과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인가요? 하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팬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응원하나요?
마치며
우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 사랑은 동정과 어떻게 다른가? 예술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할 수 있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1925년은 이를 공포로 답했습니다. 다름은 무섭고, 괴물은 제거돼야 한다. 1943년은 동정으로 답했습니다. 괴물도 한때는 인간이었고, 그들에게도 이야기가 있다. 2004년은 매력으로 답했습니다. 다름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다. 팬텀이 100년 넘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가 우리 모두의 두려움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거부당하는 것, 사랑받지 못하는 것, 우리의 '기형'이 드러나는 것. 우리 모두는 가면 뒤에 숨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틴의 선택은 우리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안전과 열정 사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관계와 위험하지만 진실된 관계 사이에서. 그녀는 안전을 선택했지만, 열정을 잊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팬텀이고, 조금씩 크리스틴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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