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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스크린을 만나다

'위대한 개츠비' 영화 변천사 – 시대 재현 방식, 개츠비의 변화, 파티의 묘사, 미국의 꿈

by finderlog 2026.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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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배를 저어 나아간다.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F.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5년에 쓴 이 소설은 미국 문학의 정전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제작도 여러 번 시도되었는데요, 1974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부터 2013년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까지 원작이 새롭게 재해석되어 담겼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개츠비가 1920년대를 다룬 소설임에도, 각 시대가 그 '1920년대'를 완전히 다르게 재현했다는 것입니다. 1974년은 고증에 집착했고, 2013년은 고증을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각 영화가 만들어진 시대의 경제 상황이 영화의 톤을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1974년 오일쇼크 직후의 개츠비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의 개츠비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게츠비와 데이지
게츠비와 데이지

1. 1920년대를 재현하는 방식: 고증 vs 감각

1974년 잭 클레이튼 감독의 버전은 완벽주의에 가까웠습니다. 의상 디자이너 테오니 V. 올더레지는 실제 1920년대 패션을 철저히 연구했습니다. 데이지(미아 패로우)가 입은 드레스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빈티지 의상들을 참고해 만들어졌습니다. 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의 핑크색 슈트도 당시 실제로 유행했던 스타일이었습니다. 촬영지도 실제 1920년대 저택들을 사용했습니다. 뉴포트의 로즈클리프 맨션이 개츠비의 저택으로 쓰였고, 롱아일랜드의 실제 부호들의 저택이 배경이 됐습니다. 세트 디자인은 가구, 소품, 벽지까지 1920년대에 충실하려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시각적으로는 완벽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로 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박물관 같았습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살아있지 않은 듯했습니다. 파티 장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츠비의 파티는 우아하고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샴페인을 마시고 재즈를 들으며 춤췄지만, 모든 것이 통제된 느낌이었습니다. 광기나 과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은데, 감독은 1920년대 상류층의 "우아한 타락"을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개츠비는 완벽하게 우아했습니다. 그의 슈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그의 미소는 연습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너무 우아해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원작의 개츠비는 데이지에 대한 집착으로 거의 미쳐가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레드포드의 개츠비는 너무 침착했습니다. 심지어 데이지를 5년 만에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도 그는 긴장하긴 했지만,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미아 패로우의 데이지는 연약하고 우유부단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원작 묘사대로 "돈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동시에 떨렸습니다. 그녀는 개츠비와 톰(브루스 던) 사이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이 데이지는 악녀가 아니라 약한 여자였습니다.
2013년, 바즈 루어만은 정반대 전략을 택했습니다. 고증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 의상은 1920년대 스타일을 참고했지만, 현대적으로 과장했습니다. 프라다와 브룩스 브라더스가 의상을 디자인했는데, 1920년대 느낌이 나지만 동시에 2013년의 패션쇼 같기도 합니다. 가장 큰 차이는 음악입니다. 1974년 영화에서는 1920년대 정통 재즈인 넬슨 리들의 재즈 스코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2013년에는 개츠비의 파티에 힙합이 흐르고, 케냐 웨스트, 페리 윌리엄스, 루페 피아스코의 음악이 1920년대 배경과 반하듯 쏟아집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1920년대 파티에 힙합이라니? 하지만 루어만의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1920년대 사람들에게 재즈를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2013년 관객에게 재즈가 주었던 감각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요, 당시 재즈는 혁명적인 스캔들이었고 기성세대는 재즈를 타락한 음악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세트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제 저택 대신 CG를 사용해서 지나치게 크고 화려해서 현실적이지 않게 표현했지요. 감독은 개츠비의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 꿈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파티 장면은 거의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합니다. 불꽃놀이, 샴페인 폭포, 수백 명의 댄서들. 모든 것이 과장되고 과도합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도 레드포드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우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간 어색했습니다. 그의 미소는 너무 밝아서 불편했고, 그의 제스처는 과장됐습니다. "Old sport"라고 말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이 더 정확한 개츠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실제 상류층이 아니라 상류층을 흉내 내는 사람이었고, 그 흉내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5년 만에 데이지와 재회할 때는 거의 패닉 상태였습니다. 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고, 꽃병을 떨어뜨렸습니다. 캐리 멀리건의 데이지 또한 미아 패로우보다 강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약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안전과 편안함.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찼지만, 떨리지는 않았습니다.

2. 개츠비는 영웅인가 스토커인가

개츠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영화 전체의 톤을 결정합니다. 그는 비극적 영웅인가, 아니면 병적으로 집착하는 스토커인가? 1974년 버전의 개츠비는 명백히 로맨틱한 영웅이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 배우였고, 그의 개츠비는 거의 왕자님 같았습니다. 영화는 그의 범죄 배경을 최소화하고, 대신 그의 순수한 사랑에 집중했습니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 건너편에 저택을 산 것은 낭만적인 헌신으로 그려졌습니다. 그가 매주 파티를 여는 것도 데이지가 오기를 바라는 순수한 희망으로 묘사됐습니다. 영화는 관객이 개츠비를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데이지를 되찾기를 바랐고, 그가 죽는 장면은 순교자의 죽음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2013년 버전의 개츠비는 더 복잡했습니다. 디카프리오의 개츠비는 로맨틱했지만, 동시에 불안했습니다. 그의 사랑은 순수했지만, 동시에 집착이었습니다. 영화는 개츠비의 문제점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데이지의 현재 삶을 무시하고 그녀가 톰과 결혼해서 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과거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영화의 개츠비는 동정은 받지만, 동시에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그의 사랑은 순수했지만, 그는 데이지를 실제 사람으로 본다기 보다 그저 그의 꿈의 일부였고, 그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증거였습니다. 루어만도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데이지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되찾으려 한 것입니다."라고요.

3. 파티의 묘사

개츠비의 파티는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핵심적인 장면입니다. 각 영화에서 이 파티를 묘사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 시대의 경제적 상황과 가치관이 반영되었습니다. 1974년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1973년 오일쇼크 직후였고, 미국 경제는 불황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났고,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정치적 환멸이 팽배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츠비의 파티는 비판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파티 장면들은 화려했지만, 동시에 공허했습니다. 사람들은 웃고 마시고 춤췄지만, 진정한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카메라는 종종 파티가 끝난 후의 쓰레기과 깨진 잔, 버려진 음식, 지친 하인들을 비췄습니다. 영화는 이 과잉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개츠비의 세계는 붕괴됐고, 그는 혼자 죽었습니다. 1974년 관객들은 이것을 자신들의 상황과 연결했을 것입니다. 1920년대의 광란은 1929년 대공황으로 끝났듯이, 1960년대의 낙관주의는 1970년대 불황으로 끝났습니다. 2013년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습니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세계 경제를 망쳤고, 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습니다. 루어만의 파티 장면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불꽃놀이, 샴페인 분수, 공중 곡예사, 라이브 오케스트라와 DJ가 동시에 화면을 채우는 이 모든 것이 과도하고 과장되고 거의 폭력적이었습니다. 이 과잉은 다름 아닌 비판이었습니다. 루어만은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의 과도함을 1920년대 파티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과잉은 매혹적이었으니, 우리는 파티를 비판하면서도 즐겼습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모순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 모두 파티에 개츠비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발코니에서 내려다보거나,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파티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데이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와 화려함으로 그녀를 유혹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이지는 파티를 싫어했습니다. 그가 보여주려 한 화려함이 오히려 그들의 계급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4. 미국의 꿈에 대해

위대한 개츠비는 결국 미국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소년이 부자가 되고, 원하는 여자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소설은 이 꿈이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1974년 영화에서는 이를 비극으로 그렸습니다. 개츠비는 모든 것을 이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은 얻지 못했습니다. 수백 명이 그의 파티에 왔지만 장례식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닉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개츠비는 위대했습니다. 그가 꿈꾼 미래에 대한 비범한 재능, 희망에 대한 낭만적 준비성... 저는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1974년 관객들에게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을까요? 아마도 상실감이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꿈이 작동하던 시대에 대한 향수. 그 꿈이 이미 끝났다는 인식. 2013년 버전은 더 냉소적이었습니다. 영화는 닉이 정신병원에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프레임을 구성했습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금융위기 이후에도 변화는 요원하고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고, 시스템은 여전히 부패했으며, 미국의 꿈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환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우리는 "배를 저어 나아간다." 비록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계속 꿈을 꿉니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고, 이것이 우리를 계속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며

앞으로도 개츠비가 계속 리메이크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각 세대는 자신들의 개츠비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환멸과 희망을 투영할 거울로서 말입니다. 어떤 변주가 있더라도, 결국 같은 마지막 문장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를 저어 나아간다,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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